" 좋아하는 일마저 나를 외면했는데. "
조향사의 블랑쉬
레오루카 리오르다
Leoluca Riorda
-바르첼리 공화국
지중해에 위치한 자그마한 섬 국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절망에 선동당한 세계가 전쟁에 총력을 기울일 때, 약자였던 섬 국가는 전쟁통에 멸망하였다. 살아남은 인구는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난민 보호소에서 삶을 이어갔다. 레오루카는 바르첼리 공화국 난민 출신이다.
-178cm | 60kg
-2298 | 01 | 30
-20세
- 두통약, 수면제,
비스크 인형
도자기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인형이다.
졸업 후 성공한 모습으로 여동생과 재회해 전해주려고 했던 선물이, 이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렇지만 버릴 수 없다. 인형마저 버린다면 피를 나눈 가족과의 연결이 영영 끊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조향사의 블랑쉬
재능을 발견하게 된 계기
리페도라 아카데미에 들어갔다는 소문에 아이의 의붓 삼촌이 시골 마을의 학교 수업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자신만의 향초 및 향수 만들기 수업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아이는 처음으로 향을 배합하였다. 그는 원하는 분위기나 느낌에 어울리는 향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한 번 맡은 향은 쉬이 잊지 않았으며 비슷한 부류의 향을 분류해내는 데에도 능숙했다. 향료의 정량에 있어서도 정확함을 보였으며, 손도 빠른 편이었다.
도움을 요청했던 아이의 의붓 삼촌도 생각보다 뛰어난 능력에 혀를 내둘렀으며, 그 날 아이는 학생들의 향수를 전부 만들어주었다.
조향사로서의 업적
남의 권유로 한 활동이 의도치 않게 널리 알려져 업적으로 인정받은 경우가 많다.
ⅰ삶을 담은 향수(香水), 향수(鄕愁)
봉사활동으로 방문한 노인 복지관에서 봉사활동 지도 선생의 권유로 노인들에게 향수를 만들어 주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과 피어나던 청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인들이 많았고, 어르신들이 말하는 기억을 바탕으로 그는 향을 배합했다. 그가 만든 향수를 시향한 어른들은, 그 때 그시절의 아름다움을 향으로도 담을 수 있냐고 놀라워하며 그에게 고마워했다.
이 사건이 기사화되며 그는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년기, 청소년기와 청년기, 장년기….
인간의 일대기와 그 시대의 분위기, 특유의 온도와 습도마저 느껴지는 듯한 향수는 그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이루어진 감동적인 이야기에 그의 업적을 높게 사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노인 복지관에서 그가 만든 향수는 사람들에게, 삶을 담은 향수라고 불리웠다.
ⅱ 위메르 시리즈 (humeur series)
단순히 판매를 위한 향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와닿는 향수를 제조한 덕에 이후 그에게는 많은 회사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러나 물리학자의 길을 걷고자 한 소신 때문에 그는 대부분의 협업 요구를 거절했다. 그가 협업 요구를 수락한 기업은 딱 한 곳이었다.
사람의 기분을 위로해주는 향수를 만들어 봅시다.
결국 그의 마음을 만진 것은 그 한 마디였다. 자신처럼 새벽이면 자괴감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속을 태우는 사람들에게. 괜찮다가도 자신을 해치고 싶어지는 사람들에게.
괜찮다며 위안을 주고 안정감이 드는 향수와 디퓨저 시리즈를 제조했다.
위메르 시리즈는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전세계적으로 기록적인 판매량을 세운 시리즈는 조향사로 유명해지는 것을 꺼려한 그의 요구로 제작을 중지했지만, 여전히 암암리에서 그의 향수가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ⅲ 업적의 특성상, 인간의 본질을 만지는 조향사라는 칭호를 얻었다.
오늘날에도 그에겐 다수의 기업이 협업을 제안하고 있지만 위메르 시리즈 사건 이후로 그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격
자조적인 │ 갈망하는 │ 공감하는 │ 온기에 기대는 │ 극단적인
あの日の悲しみさえ あの日の苦しみさえ
그 날의 슬픔마저 그 날의 괴로움마저
その全てを愛してたあなたとともに
그 모든것을 사랑했었던 당신과 함께
胸に残り離れない苦いレモンの匂い
가슴에 남아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씁쓸한 레몬의 향기
/ 요네즈 켄시, lemon
기타
잃어버린 부모
남자는 일곱 살까지는 이탈리아의 난민 보호소에서 자랐다. 부모와 한 살 터울의 여동생과 함께.
세계는 안정을 되찾았고, 국제 평화 기구가 설립되었다지만 크고 작은 불협화음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평화로워보이는 표면 아래에선 여전히 인간인지라, 이기심과 욕망, 크고 작은 시샘이 들끓었다. 남들보다 갖추지 못한 것이 많은 난민 보호소는 작은 스파크도 불꽃으로 번지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남자의 부모는, 보호소에서의 싸움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새벽, 그가 잠에 들었을 시간이었다.
선택된 아이
일곱 살부터 아홉 살까지 꼬박 2년을, 그는 아동복지시설에서 보냈다. 싸움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난민 보호소에서 계속 키우는 건 비인도적이라며 사회복지사들이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아홉 살, 남자는 아들을 원했던 프랑스의 물리학 교수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여동생 이바니아가 시설을 나가는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을 그는 잊지 못한다.
그의 인정욕구
아이가 참 똑똑하네요. 교수 부부가 그를 선택할 때 얼핏 들었던 이야기. 남자는 다시는 연고 없이 전전하고 싶지 않았다. 똑똑한 아이가 좋아요? 그럼 제가 더 똑똑해져 볼게요. 수학을 공부하고, 더 자라서는 온갖 물리학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더 많은 지식을 갖출수록 버려지지 않으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한 인정욕구가 남자의 발목을 잡았다.
반복되는 악몽
외부와의 연락이 끊어지기 직전,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여동생의 사망소식. 여동생의 부고를 들은 이후 남자의 불면증은 더욱 심해졌다. 약을 먹고 자는 날이면 죽은 듯이 잤지만, 약 없이 잠에 든 날은 어김없이 악몽을 꾸었다. 죽은 친부모님과 여동생이 일렁일렁 손짓했다. 꿈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했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그만큼 현실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 외
1 사용 가능한 언어 :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는 난민 보호소와 아동복지시설에서 사용했다. 사실상 모국어는 이탈리아어인 셈. 프랑스어는 입양 결정이 난 후부터 익히기 시작했는데, 프랑스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걸 보면 언어 습득능력은 좋은 편. 영어는 공용어로 익혀두었는데, 타 언어만큼 유창한 실력은 아니다. 본인 필요에 따라 언어 공부 역시 차등적으로 파고드는 모양)
2 그가 어린 나이인 열두살 무렵부터 요리에 능숙했던 것은, 어린시절 친부모가 집을 비울 땐 그가 여동생에게 밥을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입학기엔 그래도 종종 요리에 손을 댔는데, 이제는 요리를 하지 않는다.
3 동화책은 여전히 읽어본 적이 없다. 어려서 그가 동화책을 읽어본 적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몸담고 있던 이탈리아의 난민 보호소에는 동화책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것. 물론, 아동복지시설에는 동화책이 존재했지만, 난민 보호소에서 이미 험한 꼴을 여럿 보고 부모까지 잃은 그는 동화책 읽기를 거부했다. 현재의 양부모의 시야에 든 후부터 입양되기 직전까지도 그는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만을 읽었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후에도 차라리 소설을 읽었으면 읽었지, 동화책은 싫어하였다.